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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민

우리의 알 권리를 포기하지 말자 본문

부산 지역 문화/청년잡지 지잡 연재분

우리의 알 권리를 포기하지 말자

임재민_ 2018. 1. 29. 20:57

우리의 알 권리를 포기하지 말자

임재민

 

  어릴 적 학교 수업시간에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 같은 말을 들으며 정보 홍수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정보검색사' 같은 생소한 자격증을 딸 것을 권유받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게 무의미하게 느껴 질 수도 있을 정도로 원하는 정보를 구글에 치면 다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한국어로 무언가를 검색해도 웬만한 건 다 나온다. 그런데 구글 검색을 하다 보면 꼭 상위에 뜨는 사이트가 있다. ‘나무위키’, ‘허핑턴포스트같은 이름으로 적힌 글이나 수십만 명이 좋아요를 누른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적은 글들이다. 굉장히 정리가 잘 되어있고 정보 밑에 또 다른 정보로 가는 버튼이 있고, 그걸 이어서 보고 나면 책 한권을 본 기분이다.

  그런데, 이 글들을 읽다 보면 한 가지 생각이 든다. 이 정보들은 정확한 정보일까? 그럴듯하게 적힌 글이라고, 출처가 있는 글이라고 다 믿을 수 있는 것일까?

 

나무위키


  나무위키는 2007'엔젤하이로'라는 건담 팬사이트 내부 소규모 위키 '엔하위키'가 전신이다. 여러 사람이 정보를 모아 내용을 더하고 고쳐나간다는, 흔한 위키 사이트라는 점에서 별로 특이할 건 없었다.

  그러다 2012년 해당 사이트에서 독립하고 '리그베다위키'라는 인도 고대 경전에서 따온 이름으로 개명하면서 규모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SNS의 순기능이 부각되고 위키들은 집단지성의 좋은 예로 자주 인용되고 있었다.

  리그베다위키는 소위 '덕후스러운' 정보들로 가득 차며 한국 하위문화를 총망라한 공간이 되었다. 그러다 위키에 달린 구글 광고창 수익이 전부 운영자에게 돌아간다는 게 알려졌고, 남의 배를 불려준 꼴이 된 유저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리그베다 위키를 폐쇄하고 비영리를 표방하며 데이터를 이어받은 곳이 나무위키다.

  나무위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료 무단수집과 사실관계 왜곡이다. 여러 사람이 글을 더하는 위키 특성상, 출처가 없다면 누가 어떻게 적은 글인지 알 길이 없어진다. 각주는 나무위키에서 사족을 다는 용도로 사용되고, 원 출처 소유자가 발견하지 않는 이상 이 글들은 익명의 누군가가 적은 하나의 정보로 위키의 일부가 된다. 데이터를 넘겨받으며 나무위키 내 상당수의 항목들은 출처를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또 나무위키에서 일간베스트나 메갈리아 등 논란이 된 사이트들의 이야기를 활발히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나무위키에 항목이 작성됐다는 것 자체만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이를 이용해 특정 의견을 공론화하려는 사람들이 토론으로 시간을 끌면 지지부진하다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문서가 그대로 남아버리고, 이 특정인의 의견이 하나의 지식처럼 여겨지는 일까지 생겨났다. 이를 이용해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단어인 이퀄리즘항목을 만들어 페미니즘을 대체하는 단어라며 사실관계를 왜곡한 사례도 있었다.


허프포스트

  

  허프포스트(개명 전 허핑턴포스트)는 미국의 아리아나 허핑턴이 설립한 인터넷 언론이다. 전속 기자의 사실관계 기반 뉴스보다 SNS나 블로그 등지에 개인이 쓴 글이 기사로 올라가는 비중이 더 높은 매체이다. 원고료를 지급되지 않는다는 정책 덕에 수많은 글들을 수집하고 있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논조가 일정치 않다는 것이다.

  정치나 시사부터 문화, 일상까지 전방위적인 기사를 수집한다는 점에서 ‘OO하는 O가지 이유같은 시선끌기용 기사가 많은 것도 문제지만, 글이 그럴듯해 보이면 신념이나 성향이 전혀 다른 사람들의 글도 같은 주제 아래 수집하게 된다. 결국 허프포스트의 글들은 개별로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큰 주제 아래에 하나로 묶으면 중심이 잡힌 의견이 아는 파편들을 수집한 무언가가 되고 만다.


페이스북 페이지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홍보 등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페이스북에서 정보를 찾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들이 자주 찾는 곳은 수십만명이 좋아요를 누른 유명 페이지들이다. 단순히 맛집, 여행팁 같은 가벼운 주제들을 모은 페이지도 많지만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카드뉴스 같은 형식들로 정리를 하는 페이지들도 있다. 그 페이지들에서 올라온 글을 봤는데, 어이가 없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수박에 물대포를 쐈는데 수압으로 책상이 부서진 건 안 보여주고 수박이 책상에서 떨어져 부서진 모습만 보여준다던가, 몇년 전의 뉴스를 최근의 일인 것처럼 가지고 와서 현황인 것 처럼 공신력을 얻는다던가, 여성들이 잘 쓰지 않는 용어를 말하는 여성들을 등장시킨 이야기를 통해 어떤 이미지를 만든다던가 하는 페이지가 더러 있었다. 그런 페이지들은 중간중간에 재밌는 자료나 유용한 정보를 배치해 구독자 수를 늘리고, 신뢰도도 높였다. 사람들은 거짓에 진실을 섞은 말을 더 잘 믿는다던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의 말이 떠올랐다.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가짜뉴스대책단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그럴듯해 보이는 소식들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게 요즘이다. 한때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백신인 척 결제를 유도하는 가짜 프로그램들이 기승을 부린 것처럼 말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은 이제 틀린 말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보기 좋은 정보라고, 잘 정리되어 있다고 그걸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정보 하나로 많은 게 바뀌는 세상에서 우리가 알 권리만큼 중요한 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속에 찌꺼기가 들었는지 밀가루로 가득 찼는지 모를 미트볼을 그저 맛있다고 먹는 사람이 되기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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