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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민

내가 아는 음식과, 부산 본문

부산 지역 문화/청년잡지 지잡 연재분

내가 아는 음식과, 부산

임재민_ 2018. 1. 29. 20:55

내가 아는 음식과, 부산

임재민

 

  TV를 켜니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전국을 뛰어다니며 미션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돌 그룹이 게스트로 나오는 모습에 채널을 고정했다. 이번화의 미션은 부산 시민에게 물어본 맛집을 찾아다니며 음식 이름을 넣은 십자말풀이를 채우는 것.

  게스트와 멤버들이 세 팀을 이뤄 돼지국밥, 파전, 곰장어, 조개구이, 어묵, 밀면, 씨앗호떡 같은 음식들을 먹으면서 해운대, 달맞이고개, 깡통시장 등 부산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프로그램 진행 때문이었지만 언양 불고기, 아메리카노, 킹크랩 같은 부산과 크게 상관없는 음식들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나왔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이 음식들도 부산 음식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예능 속 부산은 다른 도시의 음식들도 한데 모여있는, 음식의 도시처럼 보여지고 있었다.

 

  참 생소했다. 내가 살면서 본 부산은 음식에 그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도시가 아니었다. 예능 속에서 부산의 넉넉한 인심이 느껴지는 것과 같이 만두까지 얹어주던 밀면은 짜장면처럼 밥 먹기 귀찮을 때 사 먹는 음식이었다. 돼지국밥도 흔한 음식 중 하나였다. 그런데 부산 음식으로 각종 매체들에서 나오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내가 실제로 본 것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만화에선 부산은 밥을 섞어먹으면서 유대감을 다지는 속칭 '스까듭밥'의 도시로 나왔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조폭 영화들에서도 '마이 묵었다 아이가'라거나 '내가 느그 서장이랑 같이 밥도 묵고'같은 먹는 이야기가 나온 게 생각났다.

  하지만 그건 픽션 속 사례일 뿐이다. 부산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이고, 음식도 그 일상의 한 부분으로 존재한다. 영화 속 부산처럼 바다나 구도심, 달동네를 일상처럼 마주하는 사람은 많이 없다.

  나에게 부산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라면 집에서 밥해 먹기 귀찮을 때 어머니가 은근슬쩍 돼지국밥 먹으러 갈까?’ 하며 동네 근처의 돼지국밥집에 갔던 일이 생각나고, 친구와 한여름에 노래방에 갔다가 덥다면서 시원한 거 먹자고 간 밀면집이 생각난다.

  일상의 음식들이 부산의 특별한 부분처럼 보이는 자체를 트집 잡자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음식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부산 음식과 식문화가 보여주기 식 홍보재로 소모되고 만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과의 연관점이 보이지 않는 게임 쇼나 K팝 페스티벌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인터넷 뉴스 페이지에서 3월에 마블의 히어로 영화 블랙 팬서가 부산에서 촬영된다는 소식을 봤다. 광안대교, 마린시티, 자갈치시장 등의 장소가 주요 배경이 된다며 부산의 멋진 모습과 랜드마크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라는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부산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무슨 의미를 얻을 수 있을까. 사람이 멋진 모습만 있는 게 아니듯 우리가 사는 곳도 멋지지만은 않다. 멋지고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는 건 거짓말을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깡통시장 밀면집에서 푸짐한 인심으로 곱빼기 밀면을 주든, 슈퍼 히어로가 광안대교에 나타나든 보여주기 식으로 부산이 소모되는 걸 원치 않는다. 부산은 내 옆에 있는 공간이고 내가 아는 부산이 온전히 비춰지는 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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