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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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입니다. 존중해주시죠
임재민
덕후도 존중받는 취향 존중의 시대가 한 발 가까이 다가왔다. 특정 분야에 몰두하는 이를 뜻하는 ‘오타쿠’를 줄여 부르는 말인 덕후는 더 이상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많은 연예인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솔직하게 밝히며 지지를 얻는 걸 보고 숨어서 덕질을 하던 덕후들에게도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덕질거리는 너무 많고 마이너한 것들이 대부분이니 내가 하는 덕질을 이해해 줄 사람이 거의 없다. 어떻게 그걸 해소할 곳도 없이 모니터만 보고 있으려니 속만 탄다. 그런 지점에서 덕후들을 위로해 줄 공간이 있다. 바로 ‘청년취향공동체 덕후당’이다.
덕후당(https://www.facebook.com/the9party)은 2014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청년들의 다양한 취향 촉진과 덕후 연대를 위해 ‘상상편집소 피플’에서 만든 모임이다. 5월 16일자 국제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격주 토요일마다 각종 분야의 덕후들을 위한 워크숍을 개최할 예정이고, 첫 번째 워크숍으로 ‘용자 워크숍’을 개최했다. 덕후들을 위한 모임을 좀 더 가까이에서 알아보고 싶어서 용자 워크숍을 직접 찾아가봤다.
남산정역 근처 언덕을 올라 도착한 아파트 옆 작은 공간인 ‘고치’에서 용자 워크숍이 열렸다. 사회자의 인사를 시작으로 몸풀기 게임으로 간단한 추억의 애니메이션 맞추기를 했다. 어릴 때 TV를 많이 봤던 것 같은데 반 정도만 기억이 났다.
잠시 후 용자덕후가 나타나며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용자 시리즈는 ‘선라이즈’사에서 완구와 함께 제작된 일본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총 8개의 시리즈가 있다고 용자덕후는 말했다. 용자 로봇들과 함께 동행하는 소년들(고등학생 주인공이 나오는 다그온은 예외)의 간단한 짝맞추기를 한 후, 용자덕후의 8가지 시리즈에 대한 상세한 소개와 질문, 로봇 전투물이라면 빠질 수 없는 최강 로봇 가리기도 진행했다.
설정상 반물질 입자를 사용해 적을 분해한다는 제네식 가오가이가(한국명 가오가이거)가 제일 강력한 용자, 순수하게 인간의 기술로만 만든 경찰 공무원 로봇 파이어 제이데커(한국명 K캅스)가 가장 약한 용자라고 덕후는 말했다. 이후 추억의 과자들을 먹으며 용자덕후가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인 가오가이가 최종회를 봤다.
용자덕후는 최근 유행하는 마블이나 DC 등의 슈퍼히어로와는 달리, 어릴 때 본 만화에서의 추억이 생각나면서도 색다른 느낌의 히어로라는 정감이 자신을 용자덕후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어린 주인공이 자아와 감정을 가진 로봇과 교감을 하고, 때론 변신에 실패하기도 하는 인간적인 모습이 담긴 용자물만의 매력에 빠져 덕후의 세계에 입문한 용자덕후는 동생까지 유치한 애니메이션이나 본다며 자신을 타박해도 즐겁다고 말했다.
어릴 적 TV에서 틀어주던 가오가이가를 재밌게 본 기억이 있어 작중 용자로봇인 가오가이가가 왜 드라이버나 망치 같은 공구 형태의 무기를 사용하는지 물어봤다. 용자덕후는 작중 '카펜터즈'라는 무너진 도시를 복구하는 공구 형태 로봇들이 등장하는데, 그 로봇들의 모습에 맞추어 대놓고 전투하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가오가이가 역시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 공구 모양 무기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후 플라스틱 카드로 용자로봇 등 다양한 굿즈를 만들며 워크숍은 마무리되었다.
평소라면 취향을 무시받을지도 모르는 덕후들이 당당하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의미있는 자리였다. 이후로도 많은 이들이 좋아하지만 쉽게 취향을 밝힐 수 없는 SM 엔터테인먼트 아이돌 덕후, 화장품 덕후 등 다양한 워크숍이 예정되어 있다.
덕질은 우리의 삶에 윤활유가 되어준다. 윤활유가 칠해지지 않은 기계는 쉽게 녹이 슬거나 마모되기 쉽다. 그리고 조그만 분야라도 덕후가 된다면 우리 삶에 더 좋은 관심거리가 생기고 취향에 대한 존중이 생긴다. 누군가가 보기에 덕질은 뻘짓일 수 있겠지만, 그 뻘 속에서 진주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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