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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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기너즈 가이드 2
임재민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무몽크. 딱히 아는 팀은 없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어떤 팀의 이름이 끌렸다. 그리고 저번과는 달리 입구에서 어떤 팀을 보러 오셨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렇게 물어 본 걸 바탕으로 공연 수익을 나누는 전통적인 관객 집계법이었다. 나는 한번도 본 적 없었지만 이름만으로도 왜인지 모르게 끌리는 그 팀의 이름을 답했다. 바로 ‘보니파이’.
그날 공연한 네 팀 중 첫 팀인 ‘리트’가 무대에 올라왔다. 사전에 무몽크 카페에서 읽어 본 홍보문에는 포스트 그런지 장르라고 적혀있었고 실제로 무대에서도 자신들을 그렇게 소개했는데, 이 당시엔 코드 서너개짜리 노래면 모두 펑크가 아닌가 하는 얕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작 펑크 팀이라곤 크라잉넛 정도밖에 몰랐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이 팀도 코드 서너개에 멜로디도 단순해 ‘펑크인데 좀 더 지글지글한 소리를 내는 팀’ 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지금은 이 팀이 사라졌고, 이 팀의 드러머께선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라는 팀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신다.
두세번째 팀은 어떤 팀이었는지,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마지막 팀이 바로 이름만 보고 찾아온 보니파이였다. 카페에서 읽었던 소개에는 일렉트로닉 그런지라고 적혀있었다. 그런지면 그런지지 왜 일렉트로닉이란 이름을 붙인건지 의아했는데, 보컬을 하시는 분이 팔뚝만한 전자 건반을 꺼내서 연주하셨다. 저렇게 작은 건반도 있었나 했는데 건반을 누르니 삐융삐융하는 소리가 났다. 아마 25키, 37키 정도 되는 작은 신시사이저였을 것이다.
그런지라는 장르 안에 묶여있었지만 앞의 팀보단 그동안 듣던 팝에 가까웠고, 듣기 편했다. 서너 곡쯤 연주했을 무렵, 보컬분이 팀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보니‘파이’라는 이름인데다 막 전자악기도 쓰고 하니 당시엔 생소하던 무선 인터넷 기술인 ‘와이파이’ 같은 기술에서 따온 이름인가 했는데, 부산 사투리로 막상 보니 별로라는 뜻의 ‘보니까 파이네’에서 끝 글자를 빼서 ‘보니파이’라고 했다.
그런데 보니까 파이까진 아니었다. 다음 공연도 보려고 마지막 멘트로 홍보하신 보니파이 싸이월드 클럽에 가입했다. 페이스북이 없고 신인밴드들은 라이브클럽 카페에 글을 올려 자신들을 홍보하던 때라 일일이 해당 밴드 카페나 클럽에 가입해서 공연 일정같은 정보를 얻어야 했다.
그리고 몇주 후 다시 방문한 보니파이 공연. 보컬분이 나를 보고 ‘또 오셨네요’라는 말을 해주셨다. 동네 삼촌처럼 생겼지만 뮤지션으로 무대에 서는 사람이 나를 알아본다니, 무의식적으로 뭔가 들뜬 기분이 들었다. 이름을 불러주면 의미가 되고 꽃이 된다는 어느 시처럼 말이다. 몇 마디를 나누다 내가 싸이월드 클럽에 가입해있는 것도 이야기하자 메일주소를 보내주면 자작곡 EP 음원들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음원을 MP3 플레이어에 담아 한동안 듣고 다녔다. 라이브를 들을 때만 못했고 기성가수의 음악들보다 음질 등 많은 것들이 떨어졌지만, 가수가 자신의 음악을 무상으로 보내준다는 자체가 팬을 위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보니파이 공연을 보러 다녔다. 보니파이 공연을 보러 다니며 같은 무대에 선 팀들과 공연장 카페에 가입해 더 많은 인디밴드와 공연장을 알게 되고,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지갑이 살살 녹았다. 월급 중 꽤 많은 돈이 공연 관람비로 들어갔다. 하지만 보니파이가 어느 순간 활동을 중지하면서 더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여름이 되었고 부산 국제 록페스티벌이 열렸다. 라인업을 봐도 크라잉넛과 윤도현밴드말곤 아무도 모르는 팀이었다. 국카스텐은 TV에 나오기 훨씬 전이라 한낮에야 무대에 올랐다. 나오는 팀들 중 언체인드라는 팀이 찾아보니 부산에선 꽤 유명하다고 했다. 락 좀 듣는 친구들한테 언체인드 아냐고 물어보니 ‘언인챈트’라는 팀도 있었냐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사전정보도 거의 없었고, 아쉽게도 이때 내 머릿속엔 낮 시간대에 공연한 국카스텐 하현우가 ‘부산은 부두와 산이 많아서 부산이다’ 라고 하는 개그인지 정보소개인지 애매한 멘트를 한 것과, 크라잉넛 공연 도중 퍼붓는 소방차 물줄기를 맞고 탈진해 화장실에서 대충 말린 옷을 입고서, 다대포에서 탈출하는 사람으로 가득한 막차를 타고 집에 간 기억밖엔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마저도 2011년 삼락공원으로 옮겨 열린 록페스티벌과 섞인 것 같지만.
그렇게 2010년은 내가 부산 인디밴드를 처음으로 접한 해였다. 이게 내 기억 속에 남은, 처음으로 접한 부산 인디씬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처음은 늘 기억나는 법이다. 그 기억이 점차 희미해질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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