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민의 리뷰] no.3 복원하라, 음악의 뿌리와 우리의 신명을!
by 재민
부산 인디 음악을 듣는 사람 중 스카웨이커스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다. 그만큼 스카웨이커스는 오랜 시간 동안, 늘 그 자리에서 조금씩은 색을 달리하는 모습으로 부산 인디씬에 머물러 왔다.
스카웨이커스의 핵심 멤버인 이광혁은 스카&레게 음악을 하면서도 때론 힘 있는 드러밍을 보여주며 세션 등 다른 모습으로도 활동하는,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뮤지션이다. 그런 그가 바나나몽키스패너의 드러머이자 풍물패로도 활동하는 후배인 최형석과 ‘전통리듬연구소’를 표방하는 스터디 그룹 ‘루츠리딤’을 결성한다. 이후 스카웨이커스의 색소포니스트인 최정경, 가야금 연주자이자 싱글앨범을 발매한 박현정 등을 영입해 밴드의 형태를 갖추었다.
루츠레코드쇼 vol.2에서 처음 모습을 선보인 이들은 현 멤버를 갖춘 후 처음으로 데뷔 무대를 기획한다. 각종 전통 리듬을 선보이는 팀답게 리듬의 근본인 신명과 가무, 합쳐 ‘신명가무’ 라는 이름의 무대를 선보이게 되었다.
3월 23일. 부산대 썸데이를 찾았다. 통짜 조명으로 이루어진 바닥부터 천장까지 화려한 조명으로 무대가 반짝이는, 바를 겸하는 공연장이다. 이런 곳에서 포크 음악, 전통 음악과 레게음악이 어울릴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첫 번째로 본명을 쓰는 솔로 포크 뮤지션 ‘다은’이 나왔다. 김추자의 노래 등 커버곡과 자작곡을 준비했지만, 아쉽게도 처음 들어보는 뮤지션이었기에 자작곡을 잊어먹고 말았다. 다만 마지막 자작곡을 소개하는 말 중 ‘개마고원에 가보고 싶어 만든 노래’란 말이 인상에 남았다.
다음 순서는 포크 뮤지션 곡두. 맨발에 수수한 옷차림으로 무대에 올라온 그는 자신의 노래는 신나지는 않지만, 자신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어찌 보면 불편할지도 모르는 ‘애환’도 신명의 하나라는 말을 남겼다.
하이라이트는 그의 대표곡이기도 한 ‘막걸리’. ‘막걸리걸리 막걸리 묵자’를 잔잔히 되뇌는 그의 목소리는 그의 말대로 꼬막이 어울리기도 하고, 자신을 소개하는 ‘지멋대로 노래하는’ 뮤지션다웠다. 번쩍거리는 펍에서, 누군가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할지도 모르는 노래였지만 잔잔하게 귀와 마음을 가라앉혀줬다. 그의 말대로, 슬프다가도 기쁜 애환이 있기에 완전한 기쁨인 신명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무대였다.
그리고, 루츠리딤이 다음 순서로 올라왔다. 이전에 몇 번의 무대를 선보여 왔지만, 현재의 구성을 이루어 무대에 올라온 건 처음이라고 했다.
무대 가운데를 중심으로 왼쪽엔 전자악기가, 오른쪽엔 전통악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왼쪽에는 이광혁이 연주하는 롤랜드 핸드소닉 전자 퍼커션과 코르그 카오스패드, 최정경이 연주하는 노베이션 미니노바 신디사이저가 자리 잡았고, 오른쪽에는 박현정이 연주하는 25현 가야금과 최형석이 연주하는 젬베와 장구, 꽹과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전자악기와 전통악기. 상극이라 생각하기 쉬운 구성이다. 도무지 섞여들 것 같지 않고 심지어 편을 나눈 악기 구성 앞에서, 어떤 음악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년멤버 두 명의 경력을 보면 짐작하겠지만, 루츠리딤이 선보이는 음악들의 두 가지 축은 국악과 아프리카 음악이다. 둘 다 리듬이 강조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음악이다. 하지만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되어 온 음악이기도 하다. 그나마 아프리카 리듬이 덥스텝 같은 일렉트로니카 음악의 전자음 속에서 대중성을 얻고 박자라도 유지됐다면, 국악 리듬은 국악기가 편곡 과정에 들어가는 게 대부분일 정도에다 ‘전공자 음악’으로 인식되어 접근성마저 좋지 않았다. 이광혁과 최형석 두 사람의 전통 리듬 공부는 뿌리의 Roots, 복원한다는 Redeem을 합쳐 뿌리의 복원이라는 포부를 내건 그룹 ‘루츠리딤’으로 재탄생했다.
뱃노래나 태평가 같은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찾아 듣긴 쉽지 않았던 국악부터 쿠쿠, 양카디같은 처음 들어보는 아프리카 리듬까지 모여 알 듯 말 듯 한 음악들이었지만 신명나는 음악을 들려줬다. 가야금 소리와 신시사이저 소리가 섞이고, 카오스패드에서 나오는 전자음과 전자 퍼커션, 전통 퍼커션의 소리가 섞였다. 국악과 아프리카 리듬은 생각보다 잘 섞여들었다. 이걸 완전한 전통음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렇다고 전자음악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최형석은 화려한 금관이 장식된 젬베부터 장구와 꽹과리를 넘나드는 연주를 했고 이광혁 역시 카오스패드를 누르고 전자 퍼커션을 두드리다가도 옆에 자리 잡은 드럼으로 옮겨가 힘 있는 드럼 연주를 선보였다. 음악뿐만 아니라 퍼포먼스까지 챙긴, 그야말로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음악이었다.
공연 중간의 멘트 시간. 이광혁은 자신을 포함한 우리는 서양 음악만 즐긴 건 아닌가 한다며, 서양 리듬보다 한국 리듬이 어렵다고 말했다. 어렵지만 신나는 국악 장단. 한국 리듬을 복원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겠단 목표를 내건 그들은 국악 장단이 섞인 노래인 장윤정의 ‘꽃’을 마지막으로 연주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마지막 순서는 레게 밴드 해피피플. 여럿이 출연하는 공연에선 보통 마지막 팀이 헤드라이너가 되어 무대를 달궈주지만, 이날은 조금 달랐다. 해피피플은 ‘그대는’, ‘Vacation’ 등 밴드 특유의 편안한 노래를 들려줬다. 식사 후 마시는 커피처럼 잔잔하게 와닿았고, 잔잔한 분위기를 적당하게 느꼈을 즈음 무대가 끝났다. 반주 한 잔으로 시작해 메인 요리를 먹은 후, 커피 한 잔을 마신듯한 짤막한 코스요리 같은 공연이었다.
신나는 것과 춤추는 것 모두 좋지만, 마냥 신날 수만도, 마냥 춤출 수만도 없는 게 우리의 삶이다.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제대로 신명을 끌어낼 수 없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마치 뿌리를 알 수 없게 된 전통음악처럼 말이다.
루츠리딤의 첫 공연은 공연 제목처럼 신명 났지만 동시에 조심스러웠다. 뿌리를 무작정 파헤치기보단 잔뿌리부터 조심스레 다가가는, 전통 음악을 연구하는 연구 모임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접근이었다. 각종 행사 출연을 시작으로 활발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그룹 ‘루츠리딤’. 풀 밴드 형태 음악도 좋지만 이렇게 목적을 가진, 정형화되지 않은 음악 그룹이 부산에 더 많아지길 기대해본다.